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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Cat Soup> : 말 없는 세계가 건네는 생의 감각 Cat Soup는 이야기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이다. 등장인물은 말을 하지 않고, 화면에는 친절한 안내도 없다. 그 대신 화면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과 죽음, 시간과 감각, 존재와 부재를 아무렇지 않게 한 장면 안에 겹쳐 놓는다. 이 작품은 줄거리를 따라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라, 감각을 통과하며 받아들이는 영화에 가깝다. 관객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Cat Soup는 삶이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고도, 삶의 감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 준다.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세계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의 부재다. 인물들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도 않는다. 대신 몸의 움직임과 .. 2025. 12. 21.
영화 <Nasu: Summer in Andalusia> : 혼자 달리는 시간의 밀도 Nasu: Summer in Andalusia는 자전거 경기를 다루고 있지만, 스포츠 특유의 긴장이나 극적인 승부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영화는 한 선수가 경기 한가운데에서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뜨거운 햇볕 아래 펼쳐진 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 그리고 혼자 달리는 시간이 화면을 채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로 향하는 과정에서 인물이 어떤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가이다. 영화는 이 감각을 과장하지 않고, 매우 절제된 호흡으로 보여 준다.영화 속 경기보다 먼저 드러나는 고독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경기의 규칙이나 전략보다, 주인공이 처한 상태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그는 팀의 중심에 있지 않고, 주목받는 위치에서도 벗어나 있다.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 2025. 12. 20.
영화 <On-Gaku: Our Sound> :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시작된 소리 On-Gaku: Our Sound는 음악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음악을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목적 없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리듬이 놓여 있다. 주인공들은 특별한 재능도, 명확한 목표도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듯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그 소리가 반복되면서 음악이라는 형태를 갖추게 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 준다. 무엇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이다 보니 생겨난 흐름이 이야기를 이끈다.영화 속 목적 없이 모인 시간의 흐름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느슨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학교가 끝난 뒤의.. 2025. 12. 19.
영화 <Cencoroll> : 경계를 잃은 생명과 도시의 거리 Cencoroll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도시에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지만, 그 중심에는 위협이나 공포보다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영화는 이 생명체를 특별한 설명 없이 등장시키고, 인물들 역시 그것의 기원이나 목적을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체가 도시에 스며들며 만들어 내는 거리감과 관계의 변화를 차분히 관찰한다. 화면은 단순한 선과 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도시와 생명체, 그리고 인간 사이의 미묘한 긴장이 또렷하게 드러난다.영화 속 도시에 스며든 알 수 없는 존재이 작품에서 생명체는 외부에서 침입한 명확한 위협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도시 한가운데에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은 놀라지만 .. 2025. 12. 18.
영화 <Harmonie> : 감정이 틀어지는 순간의 미세한 진동 Harmonie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관계가 어긋나는 과정을 매우 정밀하게 포착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극적인 사건이나 명확한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느끼는 미묘한 불편함과, 그 불편함이 어떻게 관계의 균열로 이어지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화면은 단정하고 정적인 구도를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시선과 태도는 조금씩 어긋난다. 이 어긋남이 쌓이면서, 관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닫힌 공간에서 시작된 균열이 작품의 주요 배경은 학교라는 비교적 익숙한 공간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공간을 활기찬 장소로 그리지 않는다. 교실과 복도, 방과 후의 교정은 닫힌 구조처럼 느껴지며, 인물들은 그 안에서 서로를 의식한 채 움직인다. 이 닫.. 2025. 12. 17.
영화 <A Tree of Palme> : 세계를 통과하며 남긴 질문의 형태 A Tree of Palme은 하나의 세계를 통과하는 여정을 통해 존재가 무엇으로 정의되는지를 조용히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배치된 세계의 규칙과 이동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주인공은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나며, 그 여정에서 만나는 장소와 인물들은 모두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단서처럼 기능한다. 영화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그 안에서 존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차분하게 보여 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영화 속 규칙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표면이 작품의 세계는 감정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정해진 규칙과 질서에 따라 움직이며, 그 규칙은 인물에게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세계의 작동 .. 2025.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