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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Case of Hana & Alice> : 서로를 바라보며 자라나는 이야기의 결

by don1000 2025. 12. 11.

영화 &lt;The Case of Hana &amp; Alice&gt; : 서로를 바라보며 자라나는 이야기의 결

 

The Case of Hana & Alice(2015)는 한 소녀가 새로운 학교에서 시작한 작은 소문을 중심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두 인물이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지를 담담한 호흡으로 따라가는 작품이다. 영화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집중하는 일반적인 추리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사건을 바라보는 속도, 인물들이 주변을 관찰하는 방식,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내딛는 작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장면의 흐름은 빠르게 이어지지 않고, 여백을 충분히 두며 인물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이 느린 리듬 속에서 인물들의 섬세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관객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된다.

사건을 바라보는 느린 발걸음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온 아리스는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소문과 맞닥뜨린다. 소문은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사실처럼 퍼져 있지만, 그 내용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설명이 부족하다. 아리스는 소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관찰 방식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고, 공간을 천천히 훑어보며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는 데 가깝다. 교실의 분위기, 복도에 놓인 신발장,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햇빛 같은 사소한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포착하며 사건의 단서를 모은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장면 중 하나는 아리스가 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묘한 표정을 짓는 순간이다. 그녀는 대답을 서둘러 하지 않고, 상대의 말이 가진 뉘앙스를 곱씹듯 가만히 듣는다. 이 느린 발걸음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성급한 움직임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가깝다. 사건의 실체는 이 탐색 속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서사가 빠르게 사건을 해결하는 대신, 사건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어떻게 인물의 시선 속에서 형태를 갖추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관객에게 사건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아리스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걷다 멈춰 서는 장면, 의심스러운 장소를 바라보는 눈빛, 누군가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침묵 등 이러한 장면들은 사건의 의미를 서둘러 규정하지 않고 여백을 남긴다. 여백은 때로는 불확실하게 느껴지지만, 그 불확실함 덕분에 인물의 사고 과정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작품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둘 사이를 채우는 말 없는 간격

아리스가 사건을 조사하던 중 만난 하나는 처음에는 거리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은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대화의 길이도 짧다. 그러나 이 말 없는 간격은 단순한 무심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분하고 건조한 편이며, 그 시선은 사건을 단순히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더 의심하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이 간격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한다. 말이 많지 않지만, 서로의 걸음에 맞추어 걷고, 시선이 만나는 순간을 통해 마음의 결을 확인한다. 이때 영화는 대사가 아닌 움직임으로 관계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멈춰 있는 장면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그 장면은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순간,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런 순간은 서사적으로 강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작품은 이를 과장하지 않고 관찰하듯 보여 준다. 또한 둘 사이의 간격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도, 감정이 어긋나지 않는 이유는 둘이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서두르면 다른 사람은 잠시 멈추고 기다리며, 서로의 관찰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 여유는 관계의 깊이가 만들어지는 중요한 요인이다. 둘은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고, 이러한 태도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명확해진다.

하나의 결로 이어지는 마지막 흐름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 사람은 소문의 실체에 가까워지고,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이야기의 형체가 드러난다. 하지만 작품이 주목하는 것은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소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다. 둘은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말로 하지 않은 감정들을 조용히 나누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 가까워질수록 둘 사이의 간격은 초반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이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관계로 변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흐름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장면들이 빠르게 정리되거나 감정이 과하게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의 실체는 밝혀졌지만 그것은 단지 둘이 함께 도달한 지점일 뿐이며, 그 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관계의 변화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아리스에게 마음을 조금 열게 되고, 아리스는 하나가 가진 조용한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이 관계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긴 열린 구조이다. 이 작품은 작은 사건을 다루지만, 그 사건이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를 천천히 보여 준다. 사건의 목적보다 둘이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이 방식이 그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같은 장면을 함께 바라보는 모습은 더 이상 오해로 움직이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는 관계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 작품은 이 조용한 변화를 통해, 관계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과 이해의 순간들이 모여 자란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