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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ymbol> 속 인간의 실험실, 신의 부재, 히토시의 실험

by don1000 2025. 11. 8.

영화 &lt;Symbol&gt; 속 인간의 실험실, 신의 부재, 히토시의 실험

 

<Symbol>(2009)은 일본의 전설적인 개그맨이자 영화감독 마츠모토 히토시가 만든 가장 난해하고 실험적인 독립영화로 평가된다. 그의 전작 <다이엔자>가 인간의 죽음과 웃음의 관계를 다뤘다면, <Symbol>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코미디의 언어로 탐구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방대하다. 한 남자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눈을 뜬다. 그는 어디서 왔는지,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방 안에는 문도, 창문도, 출구도 없다. 오직 벽에 수많은 ‘작은 버튼 모양의 성기 조각’들이 붙어 있을 뿐이다. 그가 그것을 누르면, 방 안에 기괴한 물건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장난감 자동차, 사다리, 팬케이크, 심지어는 수도꼭지까지. 처음엔 웃기지만, 점차 그것들이 어떤 규칙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남자는 그 ‘버튼’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무의미한 반복’처럼 보인다. 이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관객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이 공간은 무엇인가? 그는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이 ‘신’인가?

영화 <Symbol> 속 부조리한 공간, 인간의 실험실

마츠모토 히토시는 이 영화에서 인간을 일종의 ‘실험체’로 설정한다. 흰 방은 완전한 무(無)의 공간이며, 동시에 인간이 갇힌 인식의 틀이다. 주인공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새로운 사물을 얻게 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복잡한 상황에 갇히게 된다. 감독은 이 장면들을 통해 인간의 지식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스스로를 얽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관객은 그 방을 신의 실험실로도, 혹은 인간이 만든 세계의 은유로도 해석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통제되어 있고,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조차 ‘설계된 의미’ 아래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그 설계자는 누구인가? 신일까, 인간 자신일까? <Symbol>의 놀라운 점은 이 질문을 ‘웃음’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버튼을 눌러 사소한 물건을 얻고, 그것으로 어설프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면들은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슬프다. 인간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과정이 마치 코미디의 구조와 닮아 있다. 마츠모토는 그 코미디적 순환 속에서 인간의 실존적 부조리를 시각화한다. 결국 이 방은 ‘삶’ 그 자체의 축소판이다. 웃음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며, 동시에 절망을 견디는 유일한 도구다.

신의 부재, 웃음으로 버틴 존재

<Symbol>의 세계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신이 있다면 그는 무관심한 존재다. 영화의 중반부에는 멕시코에서 한 권투 선수가 가족을 위해 싸우는 장면이 교차 편집된다. 하얀 방 안의 남자와 멕시코 복서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지만, 점점 그들의 행동이 묘하게 연결되어 간다. 마츠모토는 이 교차 구조를 통해 인간의 삶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목적이 없다. 신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주인공은 버튼을 누를수록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지만, 그 규칙이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더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감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신의 부재’를 선언한다. 하지만 그 부재는 절망이 아니라, 웃음으로 대체된다. 인간은 신이 사라진 자리를 유머로 채운다. 주인공은 무의미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 웃고, 움직이고, 시도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마츠모토 히토시는 이 장면들을 통해 ‘코미디는 신 없는 시대의 기도’라고 말한다. 웃음은 비극을 무력화하고, 부조리 속에서도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이 영화에서 웃음은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주인공이 끝내 탈출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웃으며 그 현실을 견딘다. 그것이 인간의 신앙이다 — 웃음이라는 이름의 신앙.

마츠모토 히토시의 실험, 의미 없는 세계의 의미

<Symbol>의 마지막은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남긴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버튼을 누르다 결국 하나의 ‘상승’을 경험한다. 하얀 공간이 사라지고, 그는 하늘로 떠오르듯 사라진다. 그 순간, 멕시코의 복서가 승리를 거둔다. 두 사건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마츠모토는 그 교차점을 통해 ‘의미의 생성’을 암시한다. 인간의 행위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구원이든, 착각이든,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감독은 철학자 알베르 카뮈의 말을 영화적으로 실현한다 — “인간은 부조리를 인식하면서도 살아가는 존재다.” <Symbol>은 바로 그 ‘살아감’의 행위를 웃음으로 치환한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코미디지만, 실질적으로는 존재론적 드라마다. 마츠모토 히토시는 이 작품을 통해 영화의 언어 자체를 해체한다. 그는 스토리보다 감정, 논리보다 체험을 우선시한다. 관객은 이해하기보다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이건 우리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이유를 모른 채 세상에 던져졌고, 무의미한 버튼을 누르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행위 속에도 작은 기쁨, 즉 웃음이 존재한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Symbol>은 그래서 철학서보다 더 깊은, 웃음으로 쓴 인간 존재의 시(詩)다. 부조리의 한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는 능력 — 그것이 인간이 가진 유일한 신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