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Still Walking>(2008)은 일상의 미세한 온도차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일본 독립영화의 미학적 절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여름날, 한 가족이 모여 점심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다시 흩어지는 단 하루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하루 속에는 수십 년 동안 쌓인 감정의 층이 녹아 있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다. 그는 새 아내와 함께 부모가 사는 고향집을 방문한다. 그날은 죽은 형 준페이의 기일이다. 부모는 여전히 첫째 아들의 죽음을 잊지 못했고, 둘째 아들 료타는 그 그림자 아래 살아간다. 겉보기엔 평범한 가족의 모임이지만, 대화 하나하나에 묵은 감정이 배어 있다. 어머니는 여전히 잔소리가 많고, 아버지는 말이 없으며, 아들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나 고레에다는 그 침묵과 거리감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Still Walking>의 제목처럼, 인생은 계속 걷는 일이다. 죽은 자는 사라졌지만, 살아 있는 자들은 여전히 걸어야 한다. 영화는 그 걸음의 리듬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인물들이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고레에다는 관객이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스스로 피어나게 만든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영화 <Still Walking> 속 평범한 하루, 시간의 무게
<Still Walking>의 첫 장면은 부엌에서 시작된다. 어머니가 콩을 삶고, 채소를 다듬으며 하루를 준비한다. 햇살이 부엌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온다. 그 단순한 장면 속에 영화 전체의 정서가 담겨 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삶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는 감정의 무게가 있다. 고레에다는 일상의 행동 하나하나가 인물의 감정과 기억을 대신하도록 만든다. 식탁 위의 반찬, 벽에 걸린 사진, 오래된 라디오 소리 — 이 모든 것들이 세월의 잔향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잊지 못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밥을 짓고, 반찬을 차리고, 묵묵히 손을 움직인다. 그것이 그녀의 애도 방식이다. 료타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가족에게 남은 ‘대체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고레에다는 그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식탁 너머에서 가족의 표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지만,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감정은 대화가 아니라 ‘사이’에 있다. 말과 말 사이, 침묵과 시선 사이에서 관객은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그 무게는 무겁지만, 아름답다. 그것이 바로 삶의 리듬이다. 인생은 슬픔과 기쁨이 섞인 일상의 연속이며, 고레에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가장 정교하게 그려낸다.
세대의 거리, 사랑의 표현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항상 ‘거리’로 표현된다. <Still Walking>에서도 마찬가지다. 료타는 부모와 정서적으로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의 침묵을 불편해하고, 어머니의 잔소리에 짜증을 낸다. 그러나 그 거리감이 바로 일본식 가족의 특징이다.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감정은 늘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생선을 구워주고, 슬쩍 술을 따라준다. 어머니는 “밥 좀 더 먹어”라는 말로 사랑을 전한다. 이 영화의 대사들은 짧지만, 그 안에 수십 년의 감정이 담겨 있다. 고레에다는 세대 간의 거리감을 단절이 아니라 ‘다른 언어의 차이’로 본다. 그는 부모 세대의 무뚝뚝함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있는 어설픈 진심을 발견한다. 료타 역시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을 조금씩 깨닫는다. 특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페이는 훌륭한 의사였지. 넌, 뭐… 네 나름대로 살면 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체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너를 인정한다’는 아버지의 진심이 숨어 있다. 고레에다는 이런 미묘한 감정의 결을 정확히 포착한다. 사랑은 항상 같은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다. 때로는 불편함, 때로는 침묵, 때로는 잔소리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감독은 그 ‘불완전한 사랑’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남겨진 자들의 삶과 화해
<Still Walking>은 죽음의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가족은 이미 한 사람을 잃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이야기이기보다,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고레에다는 죽음을 슬픔의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바라본다. 그는 죽은 이를 그리워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료타는 부모 집을 떠난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어머니의 무덤을 찾는다. 그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는 네 할머니가 계시단다.” 그 말에는 미묘한 정서가 담겨 있다. 어린 시절 느꼈던 거리감, 어머니에 대한 불만, 형에 대한 열등감 — 그 모든 감정이 이제 이해로 바뀐다. 그는 완전히 화해하지는 못했지만, 과거를 받아들인다. 그것이 고레에다가 말하는 ‘성숙’이다. 삶은 화해의 완성이 아니라, 이해의 연속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하늘을 비춘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세상은 여전히 흐른다. 그것이 바로 <Still Walking>의 메시지다. 사람은 떠나지만, 삶은 계속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이다. 고레에다는 그 연결을 믿는다. 그의 영화는 거창한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한 희망을 남긴다. 그것은 일상 속 작은 행동들, 사소한 대화들, 미묘한 눈빛 속에 존재한다. <Still Walking>은 결국 ‘살아 있음의 영화’다. 죽은 자를 위해 울기보다, 남은 자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인간적인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