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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till Walking> 속 세대의 시간, 남겨진 마음, 사랑의 무게

by don1000 2025. 11. 4.

영화 &lt;Still Walking&gt; 속 세대의 시간, 남겨진 마음, 사랑의 무게

<Still Walking>(2008)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철학을 가장 진솔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만든 ‘사적인 추모’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단 하루, 여름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한다. 노부요시(요시다 요시오)와 그의 아내 토미(키키 키린)는 오랜만에 자식들을 집으로 불러 모은다. 가족은 한때 의사였던 아버지의 집에 모여 점심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오래된 상처를 다시 마주한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가족 모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감정의 균열이 존재한다. 이 가족은 몇 년 전 장남 준페이를 사고로 잃었다. 그는 바다에서 익사한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고, 부모는 여전히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아남은 둘째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영화는 바로 그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레에다는 이 가족의 하루를 통해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얼마나 오랜 시간 같은 공간을 돌고 도는지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고, 감정은 폭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는 수십 년의 응어리가 고여 있다.

영화 <Still Walking> 속 하루의 식탁, 세대의 시간

영화의 대부분은 식탁 주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고, 대화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고레에다는 이 평범한 식탁을 ‘세대의 무게’를 드러내는 무대로 활용한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하고, 자식 세대는 그 기대에 맞추려 애쓰지만 결국 어긋난다. 아버지는 여전히 둘째 아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그 갈등을 완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속에는 늘 준페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살아 있는 아들보다 죽은 아들이 더 자주 언급된다. 식탁 위의 음식은 풍성하지만, 가족의 마음은 메말라 있다. 고레에다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가족의 부재’를 시각화한다. 화면에는 찬란한 여름의 햇빛이 비치지만, 그 안의 공기는 묘하게 차갑다. 식탁의 웃음은 억지스럽고, 침묵은 길다. 하지만 바로 그 침묵 속에 진짜 감정이 숨어 있다. 가족이란 완벽한 화합이 아니라, 불편한 동거의 연속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감독은 세대 간의 간극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간극을 ‘시간의 흐름’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가족이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관계임을 이 하루를 통해 증명한다.

사라진 아들, 남겨진 마음

<Still Walking>의 중심에는 ‘부재한 인물’이 있다 — 이미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 그는 영화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인물의 대화 속에 살아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준페이의 방을 그대로 남겨두고, 어머니는 매년 같은 날 그의 제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그 제사는 슬픔이 아니라 의무처럼 보인다. 그들은 상실의 고통을 애도하지 않고, 일상 속에 흡수시킨다. 고레에다는 이 ‘습관화된 슬픔’을 통해 인간의 적응력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된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 남은 감정의 잔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여전히 “네 형 같았더라면”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 말은 무의식적이지만, 료타에게는 평생의 상처다. 료타는 형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부모의 인정을 갈망한다. 영화의 중반부, 료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간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잔잔히 일렁인다. 그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순간, 관객은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형의 그림자가 있음을 느낀다. 고레에다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존재하게 만든다. 그것은 표현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 바로 ‘고레에다의 감정 미학’의 핵심이다. 그는 인간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비극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Still Walking>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애도’라는 주제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말하지 못한 사랑의 무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가족 모임이 끝나고, 모두가 집을 떠난 뒤, 노부요시와 토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부엌의 그릇을 정리하고, 방 안을 쓸며, 잔잔한 하루가 이어진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불만을 갖고 있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말하지 못한 사랑이 흐른다. 고레에다는 부모 세대를 결코 냉혹하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무뚝뚝한 태도 속에서 묵직한 애정을 읽게 만든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직접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침에 남겨둔 반찬통에 마음을 담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아들이 떠난 뒤 그가 건네던 담배를 혼자 피운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고레에다는 이 ‘표현되지 않은 사랑’을 통해 일본 가족의 정서를 보여준다. 감정은 드러내지 않지만, 존재한다. 그 존재가 삶을 지탱한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료타는 어른이 되어 그날을 회상한다. 그는 말한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한 문장이 <Still Walking>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인생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기억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언제나 ‘말하지 못한 사랑’이 있다. 고레에다는 그 사랑을 가장 평범한 하루 속에서 찾아낸다. 그것이 그의 영화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유다. <Still Walking>은 삶과 죽음, 가족과 고독, 사랑과 후회의 경계를 잇는 가장 인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