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지의 <Raging Bull>(1980)은 20세기 영화사에서 폭력과 인간성, 구원이라는 주제를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영화는 전직 미들급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로버트 드 니로의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연기가 이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스코세지는 이 영화를 단순한 스포츠 전기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복싱이라는 프레임 속에 인간의 죄의식과 욕망, 자기혐오, 그리고 신을 향한 구원 욕망을 담았다. 흑백으로 촬영된 화면은 피와 땀의 질감을 더욱 생생히 드러내며, 폭력의 미학을 냉정하게 포착한다. <Raging Bull>은 단순히 복서의 이야기나 승리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과정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또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영혼의 투쟁기’다. 스코세지는 영화 내내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기며, 그 불편함 속에서 진실을 끌어올린다. 폭력은 아름답지 않지만, 스코세지의 카메라 아래에서는 그 잔혹함조차 기도처럼 느껴진다. 제이크 라모타는 링 위에서 신에게 가까워지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잃는다. 영화는 바로 그 아이러니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응시한다.
영화 <Raging Bull> 속 흑백의 폭력미학
<Raging Bull>의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단연 ‘흑백의 질감’이다. 스코세지는 컬러가 아닌 흑백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의 피를 제거하고, 폭력을 하나의 성화(聖畵)로 승화시켰다. 복싱 경기 장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오페라처럼 연출된다. 펀치가 날아가는 순간, 카메라는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고, 관객의 함성은 사라진다. 오직 제이크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만이 들린다. 그 순간, 폭력은 감각적 쾌감이 아닌 내면의 불안을 상징한다. 스코세지는 피의 색을 지워버림으로써, 폭력을 더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흑백의 대비는 죄와 속죄, 육체와 영혼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라모타의 몸은 점점 무너지고, 그의 얼굴은 상처로 뒤덮이지만, 카메라는 그 상처 속에서 어떤 숭고함을 포착한다. 스코세지는 복싱을 ‘예술 행위’로, 동시에 ‘자기 파괴의 의식’으로 그린다. 특히 링 안의 조명 연출은 마치 교회 제단처럼 느껴진다. 중앙의 빛 아래, 제이크는 마치 신 앞에 무릎 꿇은 죄인처럼 서 있다. 그는 상대를 쓰러뜨리면서 동시에 자신을 무너뜨린다. 폭력은 그에게 승리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혐오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스코세지는 관객이 폭력에 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연출한다. 대신 그 폭력을 통해 인간의 죄성을 목격하게 한다. 이 흑백의 세계에서 피는 색을 잃지만, 죄의 흔적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것이 바로 <Raging Bull>이 ‘폭력의 미학’을 넘어 ‘도덕의 미학’으로 남는 이유다.
인간의 파멸
제이크 라모타는 링 위에서는 강자지만, 링 밖에서는 가장 연약한 인간이다. 그는 질투, 의심, 분노, 폭력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아내를 의심하고, 동생 조이(조 페시)를 폭행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스스로 파괴한다. 그는 결코 외부의 적에 의해 무너지는 인물이 아니다. 그의 적은 자기 자신이다. 스코세지는 이러한 자기 파괴의 과정을 잔혹할 만큼 세밀하게 기록한다. 라모타는 타인을 때릴 때마다 동시에 자신을 찌른다. 그는 사랑과 소유를 구분하지 못하며, 신의 은총을 폭력으로 오해한다. 그의 세계는 단순하다 — 강해야 산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바로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영화 중반, 라모타가 감옥에 갇혀 벽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장면은 영화사에서 가장 절규에 가까운 순간이다. 그는 마침내 깨닫는다. 자신이 싸운 상대는 상대 복서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의 폭력은 생존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스코세지는 인간의 죄의식이 어떻게 폭력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자기 파괴의 형태다. 라모타는 세상과 싸우며 승리를 얻었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었다. 그의 성공은 공허하고, 그의 패배는 구원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스코세지는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왜 싸우는가?”라는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답은 단순하다 —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그 싸움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킨다. 링 위의 챔피언은 현실 속의 패배자다. 그것이 바로 제이크 라모타라는 인간의 비극이다.
구원의 가능성
<Raging Bull>의 마지막 장면에서, 노년의 라모타는 낡은 공연장 backstage에서 거울 앞에 선다. 그는 복싱 챔피언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서 농담을 하는 노인으로 전락해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싸운다 — 이번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복싱 장면의 대사를 읊는다. “I’m the boss, I’m the boss.”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향한 기도이자 고백이다. 그는 여전히 완전히 구원받지 못했지만, 최소한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 스코세지는 라모타에게 완전한 속죄를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인식의 순간’을 준다. 인간은 완벽히 변하지 않지만, 자신을 마주보는 순간 구원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 장면의 거울은 영화 전체의 상징이다.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은 곧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행위다. 라모타는 폭력으로 신을 찾았지만, 결국 자기 인식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는다. 영화는 그에게 회개 대신 침묵을 준다. 그 침묵이야말로 스코세지의 신앙이다. 그는 종교적 구원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구원’을 말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성경 구절 — “Once I was blind, but now I see” — 는 영화의 정수를 요약한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스스로의 어둠을 볼 수 있을 때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Raging Bull>은 그래서 폭력의 영화이자 기도의 영화다. 스코세지는 피와 땀, 죄와 구원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것은 한 남자의 몰락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고백이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거장들의 ‘성서’처럼 언급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예술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스코세지는 인간의 추함을 숨기지 않고, 그 추함 속에서만 발견되는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Raging Bull>이 단순한 복싱 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초상으로 남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