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감독의 2016년 작품 〈Paterson〉은 뉴저지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는 한 남자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독립영화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도시와 동일한 ‘패터슨’으로,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버스를 몰고,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단순함 속에서 시와 창작, 그리고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일상이 곧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작품은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 반전을 배제하고, 사소한 순간들을 세심하게 포착해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해외에서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제한적인 상영과 낮은 인지도 때문에 크게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영화를 ‘일상의 시학’, ‘관계와 대화’, ‘정체성과 창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분석하겠습니다.
영화 < Paterson > 속 일상의 시학
〈Paterson〉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상 그 자체를 예술로 승화하는 시학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패터슨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며, 버스를 운전하는 동안 승객들의 대화를 흘려듣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일상은 일반적으로 지루하거나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지만, 패터슨에게는 새로운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 됩니다. 그는 작은 수첩에 짧은 시를 적어 내려가며, 일상에서 발견한 순간들을 언어로 포착합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관객에게 예술이란 특별한 사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사소한 관찰과 사유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카메라는 패터슨의 하루를 집요하게 따라가며, 시적 리듬과 일상의 리듬을 하나로 엮어냅니다. 반복되는 하루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매번 조금씩 다른 관찰과 감정이 스며들어 패터슨의 시가 탄생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예술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태도를 제시합니다. 결국 영화는 일상을 예술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그 자체가 풍부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복의 지루함이 아니라 변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적 체험을 선사합니다.
관계와 대화
〈Paterson〉에서 또 하나 중요한 주제는 관계와 대화입니다. 패터슨은 아내 로라와 함께 살고 있으며, 로라는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꾸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패터슨과는 정반대로 화려하고 적극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룹니다. 이 부부의 관계는 갈등과 대립보다는 작은 대화를 통해 유지되고,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영화는 화려한 사건 대신 부부가 주고받는 사소한 대화와 일상의 순간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또한 패터슨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 바에서의 일상적인 대화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대화들은 큰 줄거리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지만, 주인공이 속한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관객에게도 삶의 진정한 무게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관계와 교류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패터슨이 애지중지하던 시 노트북을 잃어버린 뒤, 일본인 시인과 나누는 짧은 대화는 영화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함축합니다. 이는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Paterson〉은 대화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더 깊이 발견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작품입니다.
정체성과 창작
〈Paterson〉은 주인공의 정체성과 창작 행위를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패터슨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버스 운전사지만, 내면에서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거나 외부 세계에 알리려는 욕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오직 자신을 위한 창작을 이어갑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추구되는 ‘성공’의 개념과는 다른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창작의 가치를 외부적 인정이나 상업적 성취가 아닌, 자기표현과 내적 충족에서 찾습니다. 패터슨은 자신의 삶이 단조롭고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바로 그 단조로움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언어로 기록하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합니다. 정체성과 창작은 이 영화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는 개념으로, 패터슨의 삶과 시는 하나로 엮여 있습니다. 일본인 시인과의 만남은 이 메시지를 더욱 강화합니다. 시인은 패터슨의 상실을 위로하면서도, 시 자체가 존재하기 위한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창작이 곧 존재의 증거이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식임을 시사합니다. 〈Paterson〉은 결국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으며, 예술은 일상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임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로써 영화는 관객에게 창작의 의미와 자기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며, 삶 속에서 작은 시적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