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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Nobody Knows> : 보이지 않는 사회, 리얼리즘, 사랑의 잔재

by don1000 2025. 10. 29.

영화 &lt;Nobody Knows&gt; : 보이지 않는 사회, 리얼리즘, 사랑의 잔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Nobody Knows>(2004)는 일본 독립영화의 정점이자,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섬세한 ‘현실의 기록’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영화는 실제로 1988년에 발생한 ‘스가모 아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어머니에게 버려진 네 아이가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 남겨진 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레에다는 이 끔찍한 현실을 폭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아이들은 놀고, 웃고, 싸우고, 배고파하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나 그들의 평범한 행동 속에는 깊은 비극이 숨어 있다. 어머니가 집을 떠난 뒤에도 아이들은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 한다. 특히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는 어린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떠맡는다. 그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동생들을 돌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진다. 고레에다는 이들의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를 조용히 두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본다. 이 느리고 정적인 리듬은 관객으로 하여금 아이들의 일상 속에서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만든다. 영화의 제목처럼,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들의 고통을, 그들의 존재를,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살아남으려 애썼는지를. <Nobody Knows>는 화려한 연출이나 극적인 사건이 없는 대신, 침묵 속에서 현실의 잔혹함을 말하는 영화다. 그 침묵은 곧 사회의 침묵이기도 하다.

영화 <Nobody Knows> 속 버려진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회

<Nobody Knows>의 가장 큰 특징은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다룬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학대나 직접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가 그들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만든다. 아파트 관리인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학교도, 이웃도, 심지어 국가도 그들을 보지 않는다. 고레에다는 이 무관심을 통해 현대 일본 사회의 ‘부드러운 잔혹함’을 드러낸다. 어머니(유키가야 아야)는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가장 큰 배신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친구를 따라 집을 떠나며, 아이들에게 “엄마는 곧 돌아올게”라는 말만 남긴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이후의 시간은 아키라에게 ‘성장의 시간’이자 ‘절망의 시간’이 된다. 그는 돈이 떨어지고, 전기가 끊기고, 가스가 멈춘 집에서도 동생들을 위해 씻기고, 밥을 짓고, 웃으려 노력한다. 이 영화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폭력이 아니라 ‘일상의 반복’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고레에다는 그 과정을 감정적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쌓이는 피로와 침묵으로 표현한다. 그 조용함 속에서 관객은 사회의 방관이 얼마나 잔혹한 폭력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어둠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낮의 평온함이다. 그것이 일본 사회의 가장 냉혹한 얼굴이다.

침묵의 리얼리즘과 잔혹한 일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는 대본을 완전히 짜놓지 않고, 아이들이 실제로 성장하는 과정에 맞춰 촬영을 이어갔다. 영화의 촬영 기간은 약 1년. 계절의 변화, 아이들의 머리 길이, 옷차림까지 실제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다. 이러한 리얼리즘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진실’을 재현하기 위한 감독의 철학이다. 그는 인물들에게 감정을 연기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스스로 흘러나오도록 기다린다. 아키라 역의 야기라 유야는 당시 14살이었으며,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의 연기는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그는 대사를 외우지 않고, 그저 그 상황을 ‘살아간다’. 고레에다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얼굴보다 손이나 발, 사소한 움직임을 비춘다. 밥을 짓는 손, 문을 닫는 손잡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 이런 세세한 제스처가 감정의 본질을 대신한다. 영화의 리듬은 극도로 느리지만, 그 느림이 바로 ‘현실의 속도’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고, 사회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아이들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웃고, 놀고, 서로를 안아주는 순간들 — 그 짧은 행복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는 ‘존엄’이다. 고레에다는 그 존엄을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연약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사랑의 잔재, 인간다움의 증명

<Nobody Knows>의 마지막 장면은 일본 영화사에서 가장 조용하고 강렬한 엔딩으로 꼽힌다. 아키라는 세상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동생들을 돌본다. 그러나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그들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 영화 후반, 막내 유키가 사고로 죽게 되는 장면은 절정의 슬픔이지만, 고레에다는 울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카메라를 멀리 두고, 아키라와 동생들이 유키의 시신을 들고 밤길을 걷는 모습을 정적으로 담는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간다. 그것은 죽음을 향한 행진이 아니라, ‘살아남음의 선언’이다. 아키라는 유키를 공원 근처 땅에 묻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그 장면에서 빛은 부드럽게 번진다. 절망의 끝에서 희미한 구원이 스며든다. 고레에다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랑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떠나고, 사회가 버려도, 아이들은 여전히 서로를 지킨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희망의 잔재다. <Nobody Knows>는 슬픔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흔적’에 대한 영화다. 고레에다는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존재를 그린다. 그의 카메라는 울지 않지만, 그 침묵이 관객의 가슴을 무너뜨린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아이들의 웃음과 그림자는 잔상처럼 남는다. 그 잔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 “당신은 그 아이들을 기억하나요?” 그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이 영화의 한 부분이 된다. 그것이 바로 <Nobody Knows>가 남긴 가장 깊은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