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 Hokusai(2015)는 일본의 전통 회화가 지닌 생동감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화가 호쿠사이의 딸 오에이의 삶을 조용하고 섬세하게 따라간다. 이 영화는 거대한 예술가의 주변에서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던 한 여성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그녀가 느꼈던 갈등·자부심·고독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예술 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 가족과의 복잡한 관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오에이는 아버지의 작품을 곁에서 도우며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담담하지만 날카롭고, 조용하지만 흔들림이 있다. 영화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따라가며, 사람의 감정이 그림에 어떤 형태로 남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의 그림자
오에이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실은 거대한 이름을 가진 아버지, 호쿠사이와의 관계다. 호쿠사이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지만, 동시에 가족에게 냉정하고 무심한 면모를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주변의 감정이나 일상적인 문제에는 무심하게 지나친다. 오에이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만들어 놓은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작업을 돕고, 그의 작품에 필요한 요소들을 대신 채워 넣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때때로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아버지의 이름은 무게가 있지만, 그 무게가 오에이의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재능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눈과 손으로 세상을 그리고 싶어 한다. 그 갈등은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작은 장면 하나하나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오에이의 표정, 혹은 아버지가 지나친 요구를 할 때 잠시 멈칫하는 그녀의 손. 이런 작은 순간에 오에이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무겁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애쓴다.
이 관계는 때로는 거리감이 있고, 때로는 찬란한 순간도 있다. 아버지와 함께 작업할 때 느끼는 묘한 기쁨,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는 듯한 아쉬움. 그 복잡한 감정이 오에이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영화는 이 흔들림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호흡과 일상의 움직임으로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그림자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단순한 고통도, 단순한 영광도 아니다. 그 둘이 동시에 존재하는 자리이며, 오에이는 그 자리를 끌어안으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시선
오에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용하지만 깊다. 그녀는 일상 속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이 숨기려 하는 감정도 쉽게 읽어낸다. 그림을 그리는 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오에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어떤 감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떤 순간에 마음을 움직이는지 아주 세밀하게 보여준다.
오에이가 연인을 그리는 장면, 혹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장면들은 그녀가 단순히 기능적인 작업자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담아내는 화가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릴 때에도 단지 얼굴의 형태나 빛의 방향만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눈빛, 표정의 떨림, 말하지 않은 감정의 무게까지 그림 속에 담으려 한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예술적 감탄이나 찬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픈 현실을 마주할 때 더 깊은 흔들림을 겪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녀의 여동생이 아프고 시력이 약해지면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는 장면에서, 오에이는 자신의 눈이 가진 축복과 동시에 그 시선이 품어야 하는 책임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여동생이 바라보지 못하는 세상을 대신 봐주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그림 속에 어떤 흔적으로 남는지 영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여준다.
오에이의 시선은 결국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나타내는 기록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녀를 아버지 호쿠사이의 딸로만 보지만, 그녀가 가진 시선은 그 누구와도 다르다.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눈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을 그림에 남길 수 있는 손을 가지고 있다. 이 시선이야말로 오에이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그것이 그녀를 단순한 조수나 뒤편의 존재로 머물지 않게 한다.
남겨진 마음
영화의 후반부는 무엇이 오에이에게 남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의 곁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감정을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남은 것은 화려한 명성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이름도 아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조용히 이어진 마음의 결들이다.
오에이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는 장면은 특히 큰 여운을 남긴다. 그녀는 여동생에게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시간이 허락해 준 순간들은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가 여동생에게 해 주었던 모든 행동—함께 걸어주던 길, 눈을 감고도 느낄 수 있던 풍경을 대신 설명해 주던 순간들—이 모두 오에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는다. 그 기억들은 그녀의 그림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와 형태를 만들어준다.
또한 아버지와 남긴 시간도 중요한 흔적으로 남는다. 비록 호쿠사이는 여전히 무심하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오에이는 어느 순간 그가 말하지 않았던 애정을 조용하게 느끼게 된다. 그 애정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이어진 작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마음이었다. 오에이는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늦게 도착한 감정이지만, 그렇기에 더 깊게 스며드는 감정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그림자, 그녀의 시선, 남겨진 마음—이 세 흐름은 Miss Hokusai가 단순한 예술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조용한 여정임을 보여준다. 작품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조용히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며 그가 남긴 흔적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화면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도 오에이가 세상을 바라보던 그 시선과 그녀의 조용한 발걸음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