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의 In This Corner of the World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거대한 장면이 아닌 ‘일상’의 눈높이에서 바라본다. 작품은 히로시마 주변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건너갔는지 조용한 어조로 기록한다. 흔히 전쟁 영화는 폭발, 포격, 죽음과 같은 폭력의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이 작품은 그 틈새에 존재하는 미세한 감정의 단면—밥을 짓는 시간, 빨래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 가족끼리 주고받는 짧은 대화, 그리고 전쟁을 실감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역사적 비극의 진짜 정서를 조명한다. 스즈라는 이름의 소녀가 걸어가는 이 여정은 내내 잔잔하지만, 그 잔잔함 속에 삶의 진심이 담겨 있다. 영화는 웅장함보다 미세한 떨림을 선택하고, 관객에게 ‘어떤 삶이 시대를 견디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지닌 정적 리얼리즘은 이 작품에서 가장 깊고 성숙한 형태로 완성된다.
영화 <In This Corner of the World> 속 일상의 파편
In This Corner of the World의 첫 번째 결은 ‘일상’이다. 스즈의 하루는 특별할 것 없이 흐른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주어진 일을 하나씩 해내며,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천천히 밥을 짓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영화는 일상을 전쟁의 도입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 그 자체를 ‘삶의 중심’으로 배치한다. 전쟁은 이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존재이며, 때때로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스즈의 삶을 건드린다. 감독은 이 구조를 통해 전쟁의 잔혹함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삶의 균열’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스즈의 눈은 언제나 주변의 사소한 순간들에 멈춘다. 새로운 직물의 촉감, 마른 쌀알이 그릇에 떨어지는 소리, 저녁의 빛이 부엌을 비추는 모양, 방에 들어온 바람의 흐름. 이 작은 파편들이 그녀에게 안정감을 준다. 일상의 파편들이 모여 스즈라는 인물의 세계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일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전쟁을 견디게 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파편처럼 흩어지는 순간들이 모여 그녀의 감정을 지탱하고, 그 감정들이 모여 하루를 버티게 한다. 관객은 스즈의 작은 행동들을 통해,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체험하게 된다.
전쟁의 뉴스가 멀리서 들려올 때에도, 스즈의 세상은 이 작은 파편들로 유지된다. 그러나 감독은 이 파편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과정을 서서히, 잔인할 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부족해진 식량, 점점 사라지는 여유, 웃음 대신 늘어나는 침묵, 그리고 섬세하게 달라지는 스즈의 표정. 그 변화는 크지 않다. 하지만 관객은 그 작은 균열 속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일상은 깨지지만, 스즈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한다. 그녀의 손끝에 남은 따뜻함은 시대가 무너져도 버리지 못한 인간의 본능이다.
소녀의 견딤
스즈는 강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두려움을 드러내고, 혼자 울며, 때로는 선택을 피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혼란스러운 순간을 겪는다. 그러나 바로 이 연약함이 그녀의 ‘견딤’을 가능하게 한다. 감독은 스즈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스즈가 전쟁 속에서 감정을 견디는 방식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녀는 슬픔을 표현하는 대신 일을 하고, 불안을 뭉개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무서움을 숨기기 위해 미소를 지을 때도 있다. 이 억눌린 감정의 흐름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졌던 ‘보이지 않는 힘’을 정확히 보여준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스즈가 가장 큰 상실을 겪는 장면은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압도적인 순간이다. 감독은 음악이나 감정적 연출을 배제하고, 스즈의 표정과 시선만으로 장면을 끌어간다. 세계는 잠시 멈춘 듯 보이고, 스즈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조용히 무너진다. 그러나 무너짐 이후에 이어지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스즈는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영웅처럼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파편들을 다시 하나씩 주워 담는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한다. 이 ‘조용한 견딤’은 일본 인디 애니메이션의 대표적 감정이자, 이 영화가 관객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지점이다.
스즈의 견딤은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는 과정이다. 그녀는 전쟁 속에서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가고, 그 바닥에서 다시 일어설 작은 힘을 찾는다. 감독은 이 과정을 영웅적 서사로 만들지 않고, 대신 인물의 일상적인 동작—밥을 푸는 손, 옷을 개는 손, 문을 여는 손—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스즈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은 그녀가 다시 ‘자기 삶으로 귀환하는’ 장면이며, 영화는 그 귀환을 아주 조용하게 비춘다. 관객은 스즈의 작은 행동에서 그 누구보다 큰 용기를 발견하게 된다.
전쟁의 시간
영화의 마지막 결은 ‘시간’이다. 스즈가 살아가는 시간은 단절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흐르는 일상의 연장이다. 전쟁의 폭발은 하루의 일을 끝내는 손길을 끊어버리고,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공기가 남는다. 감독은 이 시간의 변화를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하늘의 색이 달라지고, 바람의 소리가 묘하게 변하며, 평범했던 공간이 낯설어진다. 이 모든 변화는 스즈가 겪는 감정의 진폭과 정확하게 맞물린다.
그러나 전쟁의 시간은 단지 고통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스즈는 마지막까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며, 그녀가 본 세상을 색채로 기록하려 애쓴다. 이 그림은 전쟁의 공포에서 도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즈가 시대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붙잡고, 그 손길로 시간을 이어 붙인다. 감독은 스즈의 연필 끝에서 떨리는 선 하나에도 감정을 담으며, 관객에게 ‘기억을 남기는 행위가 곧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즈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슬픔 위에 놓인 희망이 아니라, 상실을 견디고 난 다음에 도달한 평온함이다. 일상의 파편, 소녀의 견딤, 전쟁의 시간—이 세 요소는 In This Corner of the World가 지닌 감정 구조의 핵심이다. 이 작품은 전쟁의 역사보다 그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소녀의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감정은 소란스럽지 않고, 극적이지 않으며, 대신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울림을 남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는 이 조용한 울림을 가장 섬세한 방식으로 기록하며, 스즈의 시간이 관객의 기억 속에도 오래 남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전쟁을 그리지 않으면서 전쟁을 말하는 작품이며,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서 치유의 본질을 보여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