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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imizu> 속 청춘의 초상, 인간의 울음, 희망의 잔재

by don1000 202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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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의 <Himizu>(2011)는 21세기 일본 독립영화 중 가장 강렬한 사회적 은유로 평가된다. 이 영화는 청소년의 내면적 폭발과 일본 사회의 구조적 붕괴를 하나로 결합시킨 작품이다. 제목 ‘히미즈(ドジョウ)’는 진흙 속에서 살아가는 미꾸라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절망의 상징이자, 생존의 은유다. 영화는 대지진 이후의 폐허 같은 세상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스미다(소메타니 쇼타)는 보트 대여점을 운영하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지만, 그의 일상은 폭력과 모멸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는 집을 떠났고, 그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한 여학생 케이코(니카이도 후미)가 다가온다. 그녀는 그를 구원하려 하지만, 스미다는 이미 절망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묻는다. 소노 시온은 <Himizu>를 단순한 청소년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현실의 재난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 을 배경으로 하여, 일본 사회 전체의 정신적 붕괴를 청소년의 얼굴 위에 새겼다. 카메라는 잔혹할 만큼 가까이 다가가 인물들의 표정을 응시한다. 그들의 고통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의 감정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절망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절망 속에서 ‘살아 있음’의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Himizu>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세계”를 그리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성의 불씨를 다시 발견한다.

영화 <Himizu> 속 절망의 시대, 청춘의 초상

<Himizu>는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에 대한 영화적 초상이다. 주인공 스미다는 그 시대의 상징이다. 그는 희망을 믿지 않지만, 동시에 그것을 포기하지도 못한다. 그의 세상은 이미 무너졌다. 학교는 무기력하고, 어른들은 부패했으며, 가족은 폭력의 공간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 모순된 욕망이 바로 영화의 중심이다. 소노 시온은 스미다의 내면을 폭발적인 이미지로 그린다. 그는 대사보다 몸의 언어를 사용한다. 스미다가 절망 속에서 뛰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은 일종의 육체적 기도다. 그는 신에게 구원받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 영화의 배경은 폐허와도 같은 일본의 시골 마을이다. 그곳은 더 이상 인간이 살기 어려운 땅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폐허 속에서도 아이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무너진 사회의 잔해 속에서 작은 인간성을 지켜내려 한다. 소노 시온은 이 절망의 풍경을 통해 ‘청춘의 실존’을 말한다. 청춘은 희망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다. <Himizu>의 청춘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실하다. 그들은 사회의 희생양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다. 영화의 타이틀처럼, 그들은 진흙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메시지다.

폭력의 언어, 인간의 울음

소노 시온의 영화는 언제나 폭력으로 시작해 폭력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의 폭력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다. 스미다가 아버지에게 구타당하고, 자신을 혐오하며, 세상을 증오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사회의 울음이다. 영화 속 폭력은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집단의 비극을 상징한다. 일본 사회는 침묵을 강요하고, 청소년은 그 침묵 속에서 폭발한다. 소노 시온은 이 침묵을 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그의 카메라는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정지하며, 폭력의 리듬을 시각적으로 번역한다. 그 결과 관객은 폭력을 ‘본다’기보다 ‘느낀다’. 특히 스미다가 자기 자신을 때리는 장면은 인간의 자기 파괴 본능을 보여주는 동시에, 구원의 첫걸음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세상에 저항한다. 케이코는 그런 그를 이해하려 하지만, 그녀 역시 상처받은 존재다. 그녀의 사랑은 구원이 아니라 공명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함께 울 수 있는 인간’을 발견한다. 영화는 폭력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잔혹하지만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다. 소노 시온은 그 모순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 태어난다고 믿는다. 폭력은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다. 그는 이 언어를 통해 침묵한 사회를 흔들어 깨운다. <Himizu>는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말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이다.

희망의 잔재, 살아 있음의 증명

영화의 후반부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순간을 보여준다. 스미다는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케이코는 그에게 “살아줘”라고 말한다. 이 짧은 대사는 영화 전체의 정수를 압축한다. 그것은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선언이다. 스미다는 폭력과 상처를 통해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는 완전한 구원을 얻지 못하지만, ‘살아 있음’ 그 자체가 구원임을 깨닫는다. 소노 시온은 이 장면을 종교적 이미지로 연출한다. 카메라는 하늘을 향해 천천히 올라가고, 스미다의 몸은 진흙 속에 눕는다. 그는 죽은 듯 보이지만, 바로 그 순간 다시 일어난다. 그것은 부활의 은유다. 그러나 이 부활은 신학적 구원이 아니라, 인간적 재생이다. 감독은 인간을 성스럽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더럽고 추한 순간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것이 소노 시온 영화의 본질이다. <Himizu>는 잔혹하지만 깊이 따뜻한 영화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사랑하고, 울고,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스미다는 폐허 위를 뛰어가며 외친다. “나는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 이 절규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그리고 살아 있음의 증명이다. 그 외침은 2011년 이후 일본 사회의 상처를 넘어, 전 세계의 절망 속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소노 시온의 믿음이며, <Himizu>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