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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ana and Alice> : 경계의 흐릿함, 일상의 시선, 청춘의 빛

by don1000 2025. 10. 26.

영화 &lt;Hana and Alice&gt; : 경계의 흐릿함, 일상의 시선, 청춘의 빛

이와이 슌지의 <Hana and Alice>(2004)는 일본 독립영화의 감성적 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 중 하나다. 감독은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실험적 영상 기법을 활용해, 두 소녀의 우정과 성장, 그리고 첫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투명하게 그려냈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복잡하지 않다. 고등학생 하나(아오이 유우)와 앨리스(스즈키 안)가 같은 학교를 다니며 겪는 일상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간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 미야모토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세 사람의 관계가 뒤엉킨다. 하지만 이와이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청춘의 불완전함, 감정의 순수함, 그리고 거짓 속에 숨은 진심을 탐구한다. 그는 사건보다 ‘감정의 흐름’을 찍는다. 카메라는 인물의 눈동자를 따라가며, 대사보다 침묵이 더 많은 공간을 남긴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일상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빛’을 기록한다.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을 엿보는 듯한 감각 —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Hana and Alice>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이와이 슌지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감정의 시네마’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Hana and Alice> 속 우정과 사랑, 경계의 흐릿함

하나와 앨리스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다. 영화는 두 인물의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든다. 하나는 미야모토를 향한 사랑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그 거짓말은 곧 앨리스와의 관계를 흔든다. 반면 앨리스는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려다 자신도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이와이는 이 감정의 복잡함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인 대화와 작은 행동들 속에서 두 사람의 심리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에서의 짧은 시선 교환, 하교길의 침묵, 서로의 그림자를 쫓는 장면은 말보다 강렬한 감정의 흔적을 남긴다. 감독은 카메라를 인물에게 고정하지 않고, 종종 주변 풍경을 따라가며 두 소녀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이 ‘비직접적 감정 표현’은 이와이 영화의 전매특허다. 그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Hana and Alice>는 바로 그런 ‘체험형 감성 영화’다. 두 인물의 감정은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형태로 그려진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것은, 청춘의 사랑이란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와이 슌지는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지점을, 마치 빛이 사라지기 직전의 여운처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일상의 시선, 감정의 프레임

이와이 슌지의 연출 미학은 ‘감정의 거리감’에 있다. 그는 인물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대신, 멀찍이서 관찰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공기를 포착한다. 영화 속 장면 대부분은 긴 롱테이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인물들의 일상적인 행동을 따라간다. 그 결과 관객은 마치 현실의 한 장면을 우연히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하나가 미야모토를 몰래 바라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반사된 유리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과 흐릿한 배경음만이 남는다. 이 장면은 감정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음에도, 오히려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이와이의 감성이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포착’하는 대신 ‘기록’한다. 이 영화의 시각적 색채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푸른 톤과 자연광을 사용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특히, 슬로모션과 리얼타임의 교차 편집은 감정의 시간성을 시각화한다. 현실의 시간은 직선적이지만, 감정의 시간은 원형적이다. 이와이는 그 구조를 영화의 리듬으로 바꾼다. 덕분에 관객은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처럼 느낀다. 이러한 연출은 상업영화의 속도감과는 정반대의 세계를 만든다. 그것은 바로 ‘정지된 감정의 시네마’다. 이와이는 관객에게 서둘러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한 장면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게 만든다. 이런 촬영 방식은 일본 독립영화 특유의 ‘여백의 미’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시도였다.

청춘의 빛, 기억의 영화

<Hana and Alice>의 마지막 장면은 일본 청춘영화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중 하나로 꼽힌다. 앨리스가 발레 오디션을 위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 안의 불안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모두 수용하는 ‘자기 해방’의 순간이다.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출 때, 관객은 이전의 모든 감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감각을 느낀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감정의 완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운’을 남긴다. 하나와 앨리스는 여전히 서로의 삶 속에서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지만, 그 거리감이 바로 청춘의 본질이다. 이와이는 청춘을 ‘완성되지 않은 감정의 시기’로 정의한다. 그것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영화의 제목이 ‘하나 앤 앨리스’인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현실 속 불안과 열정을, 앨리스는 내면의 평온과 예술적 감성을 상징한다. 그들의 관계는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를 완성시킨다. 마지막에 흐르는 시게루 우메바야시의 음악은 감정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의 시작을 알린다. <Hana and Alice>는 청춘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간의 어색함과 불완전함 속에 존재하는 진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의 영화’로 남는다. 관객이 영화를 떠난 뒤에도, 그들의 웃음과 침묵이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와이 슌지가 만들어낸 가장 섬세한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