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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istance> 속 공허한 인간들, 죄의 무게, 관계의 가능성

by don1000 2025. 10. 29.

영화 &lt;Distance&gt; 속 공허한 인간들, 죄의 무게, 관계의 가능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Distance>(2001)는 일본 독립영화사에서 가장 섬세한 감정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1995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옴진리교 사건을 연상시키는 ‘집단 살인 테러’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감독은 그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영화는 테러 조직 ‘유토피아’의 전 구성원들이 희생된 지 3년이 지난 후, 그들의 가족 네 명이 추모를 위해 숲 속 호수 근처로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복잡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들의 만남은 어색하고 조용하며,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대화로 이루어진다. 고레에다는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거리와 고립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Distance>의 제목은 물리적인 거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거리, 관계의 거리,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결코 좁힐 수 없는 ‘영혼의 거리’를 상징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적인 카메라워크로 촬영되었다. 손으로 들고 흔들리는 카메라, 조명 없는 자연광, 미묘한 호흡 소리까지 — 모든 것은 ‘현장감’이 아닌 ‘삶의 현실감’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고레에다는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의 잔향만을 남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줄거리가 아니라 감정의 여정이다. 관객은 영화가 끝나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 모호함 속에서 인간 존재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Distance>가 지닌 힘이다.

영화 <Distance> 속 집단 사건 이후의 공허한 인간들

영화 속 네 명의 주인공은 각각 다른 이유로 추모 장소를 찾는다. 한 명은 아내가, 또 다른 이는 동생이, 한 명은 부모가, 그리고 마지막은 자식이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유가족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사회는 그들을 ‘공범자 가족’으로 낙인찍고, 그들은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 고레에다는 이들의 심리를 화려한 연출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카메라를 멀찍이 두고, 그들이 말없이 걷고, 앉고, 서로를 피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비춘다. 이 거리감은 단순한 연출적 선택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사건 이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아무도 완전히 다가가지 못한다. 그들은 ‘공감’을 말하지만, 진정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네 명이 모닥불 앞에 앉아 조용히 앉아 있는 시퀀스다. 대화는 거의 없고, 바람 소리만 들린다.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은 각자의 고독을 느낀다. 고레에다는 이 장면을 통해 ‘사람은 결국 혼자다’라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고독은 완전한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독을 인식함으로써,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Distance>는 그런 ‘고독의 윤리학’을 탐구한 영화다.

기억의 파편과 죄의 무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Distance>에서 기억을 하나의 퍼즐로 다룬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건 당시의 구체적 기억을 피하려 하지만, 그 기억은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플래시백은 거의 없지만, 인물들의 대사와 표정이 과거의 상처를 환기한다. 특히 한 남성이 “나는 그녀를 이해하려 했어. 하지만 끝내 알 수 없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의 정수를 요약한다. 그는 아내가 왜 그 집단에 가담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름 속에서 그는 그녀를 미워하지도, 완전히 용서하지도 못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의 무게’다. 고레에다는 이 죄를 신학적 개념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심리적 반응으로 포착한다. 누군가는 물을 마시며, 누군가는 낙엽을 밟으며, 누군가는 사진을 바라보며 — 각자의 방식으로 죄책감과 마주한다. 영화의 리듬은 느리지만, 감정의 진폭은 크다. 그것은 인간의 기억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는 ‘감정의 잔향’ 임을 보여준다.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Distance>의 인물들은 그 잔향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 잔향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다. 고레에다는 이 점에서 ‘기억’과 ‘용서’의 관계를 철저히 해체한다. 그는 용서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대신,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인간의 구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윤리학이다.

거리의 미학, 관계의 가능성

<Distance>의 제목이 의미하는 ‘거리’는 단순한 공간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의 본질적 조건이다. 고레에다는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 거리감이 곧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만든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려다 멈춘다. 그들은 조심스럽다. 다가가면 상처를 줄 수 있고, 멀어지면 죄책감이 생긴다. 이 모순적 감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고레에다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간의 리듬’을 사용한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 카메라의 위치, 프레임의 여백 — 모든 것이 감정의 간격을 시각화한다. 그는 인간의 관계를 ‘가까워질 수 없는 가까움’으로 그린다. 영화 후반부, 그들은 갑작스러운 폭우 속에서 길을 잃는다. 카메라는 흔들리고, 인물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그 장면은 혼란스러우면서도 묘하게 평화롭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들은 비로소 서로의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공감은 가능하다. 그것이 고레에다가 말하는 ‘거리의 미학’이다. <Distance>는 인간의 관계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영화다. 그것은 냉소가 아니라, 따뜻한 체념이다. 타인과의 거리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영화는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것이 바로 <Distance>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