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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fter the Storm> : 실패의 일상, 비 오는 밤, 폭풍 뒤의 새벽

by don1000 2025. 11. 4.

영화 &lt;After the Storm&gt; : 실패의 일상, 비 오는 밤, 폭풍 뒤의 새벽

<After the Storm>(2016)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인생의 덧없음과 가족의 온기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현실 속 잔잔한 고통을 유머와 따뜻함으로 감싼다. 영화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한때 촉망받던 소설가였지만, 지금은 사설탐정으로 일하며 도박으로 돈을 탕진하는 중년 남자다. 그는 이혼했고, 전 아내(요코 마키)와 아들 싱고는 그를 멀리한다. 그러나 료타는 여전히 작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되찾고 싶어 한다. 그는 실패의 끝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영화는 그런 료타의 불완전함을 정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고 어설픈 시도를 따뜻하게 바라본다. 고레에다는 이 영화에서 ‘완벽하지 않은 삶’을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료타는 도박을 끊지 못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며, 여전히 자기 합리화를 반복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부족함 속에서 인간적인 진심을 본다. 감독은 말없이 그에게 시간을 준다. 변화는 천천히, 아주 작게 일어난다. <After the Storm>은 실패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성장의 일부로 바라보는 영화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그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끝나지 않은 실패의 일상

료타는 인생의 ‘패배자’로 보인다. 그의 하루는 반복되는 탐정 일, 작은 사기, 그리고 로또 구입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변명하듯 말한다. “나는 아직 소설을 쓰고 있어.” 그러나 그 말 속에는 현실을 부정하는 슬픔이 묻어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믿지 못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한다. 그가 도박장에서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고레에다는 그런 료타의 무기력함을 가감 없이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을 발견한다. 그는 완전히 무너진 인물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여전히 변화를 꿈꾼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의 형태일 뿐이다. 영화의 중반부, 료타는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를 찾아간다. 요시코는 아들의 삶을 애써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비가 그치면 바람이 분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살아야지.” 이 대사는 고레에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After the Storm>은 그러한 ‘계속됨’의 의미를 조용히 기록한 영화다. 거대한 깨달음이나 극적인 변화는 없다. 대신, 일상의 작고 고요한 순간들이 쌓여 인간을 다시 일으킨다. 그것이 이 영화가 지닌 힘이다.

비 오는 밤, 가족의 기억을 마주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폭풍이 몰아치는 밤, 료타가 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어머니의 집에 머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After the Storm>의 핵심 주제 —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 — 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창문 밖에는 세찬 비가 내리고, 방 안에는 세 사람의 침묵이 흐른다. 그들은 한 가족이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삶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밤만큼은, 시간과 관계의 벽이 허물어진다. 료타는 아들과 함께 작은 텐트를 치고,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잠이 든다. 그 장면에서 고레에다는 감정의 폭발 대신, 미묘한 따뜻함을 선택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 비추지 않는다. 대신 창문에 맺힌 빗물, 흔들리는 커튼, 그리고 빗소리를 따라간다. 그 조용한 리듬이 인간의 감정을 대신 말해준다. 료타는 그 밤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다시 기억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폭풍이 지나가고, 현실이 찾아온다. 전 아내는 그에게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밤, 세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고레에다는 바로 그 순간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관계는 완전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After the Storm>은 그 따뜻한 불완전함을 노래하는 영화다.

폭풍 뒤의 새벽, 여전히 이어진 마음

비가 그치고 난 새벽, 료타는 혼자 어머니의 아파트 앞에 서 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다. 그러나 그는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돈은 없고, 소설은 완성되지 않았으며, 가족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미묘한 평화가 있다. 그는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고레에다는 이 깨달음을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의 소리와 도시의 아침 공기를 통해 전한다. 삶은 계속되고, 그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변한다. <After the Storm>은 인간이 완벽하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료타는 로또를 사러 가는 대신, 아들이 준 작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그 종이에는 “다음엔 또 만나자.”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단순하지만, 그것은 희망의 언어다. 고레에다는 그 짧은 문장 속에 인생의 의미를 담았다. 삶은 거창한 성공이나 구원이 아니라, 누군가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폭풍은 끝났지만, 인간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After the Storm>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실패와 후회, 미련과 사랑이 뒤섞인 삶의 조각들 — 그 안에는 여전히, 인간의 따뜻함이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