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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fter Life> 속 죽음 이후, 한 장면의 삶, 또 다른 시선

by don1000 2025. 10. 30.

영화 &lt;After Life&gt; 속 죽음 이후, 한 장면의 삶, 또 다른 시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After Life>(1998)는 인간의 기억과 존재의 의미를 다루는 독립영화의 걸작이다. 영화는 죽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일주일 동안 머무르는 중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평생의 기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단 한 가지 기억만을 가지고 영원히 머물게 된다. 이 설정은 단순하지만, 철학적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 속 사람들은 누구나 평범한 존재들이다. 전쟁 중에 사랑을 잃은 노인, 평생 일만 하다 죽은 회사원, 청춘을 후회하는 젊은 여성, 그리고 아직 어린 소년까지. 그들은 모두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어떤 기억이 진짜 행복이었는가’를 고심한다. 고레에다는 이 과정을 판타지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실제 다큐멘터리 인터뷰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카메라는 느릿하게 움직이며, 인물의 표정을 길게 비춘다. 그들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회상한다. 이 장면들은 마치 관객이 직접 인터뷰를 듣는 듯한 감각을 준다. 영화는 죽음 이후의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얀 벽, 나무 책상, 차분한 조명, 오래된 서류함 — 마치 오래된 공공기관 같다. 그러나 그 단순한 공간 속에서 ‘기억’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살아난다. <After Life>는 결국 ‘기억의 기록영화’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기억이야말로 인간을 영원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영화 <After Life> 속 죽음 이후, 기억으로 존재하는 세계

<After Life>의 세계는 죽음 이후임에도 이상할 만큼 현실적이다. 이곳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고, 심판도 없다. 대신, 기억을 선택해야 하는 일종의 ‘행정 절차’만 존재한다. 고레에다는 이 세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한다. 직원들은 새로 온 망자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생애를 기록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준다. 그들은 그중 하나의 기억을 고르고, 그 기억을 재현하는 짧은 영화를 제작한다. 그리고 그 영상 속 기억이 완성되면, 영혼은 사라진다. 이 과정은 마치 ‘삶의 편집’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쌓아온 수많은 기억 중 단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까? 사랑, 슬픔, 기쁨, 혹은 평범한 일상? 영화 속 노인은 전쟁 중 만났던 연인의 미소를 선택하고, 젊은 여성은 어린 시절 공원의 풍경을 선택한다. 어떤 이는 행복했던 날보다, 평범한 하루를 고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때 나는 살아 있었으니까.” 이 대사는 영화 전체의 핵심이다. 고레에다는 죽음을 통해 삶을 역으로 비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영원히 이어진다. 인간은 육체가 아니라,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것이 <After Life>의 가장 깊은 철학이다. 고레에다는 종교나 초월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능력 — ‘기억하고, 느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영화의 중심에 둔다. 이 세계는 차갑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인간성이 흐른다.

한 장면의 삶, 인간을 규정하는 기억

고레에다는 기억을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으로 다룬다. 영화 속 인물들이 선택하는 기억은 모두 달라 보이지만, 그 공통점은 ‘진심으로 살아 있었던 순간’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는 사랑을, 어떤 이는 바람을, 어떤 이는 단순한 햇살의 냄새를 기억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인간의 행복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 속에 존재함을 말한다. 그는 극적인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 카메라는 그들의 눈빛에 머문다. 눈물이 흐를 때조차 음악은 흐르지 않는다. 침묵이 감정을 대신한다. 고레에다는 이 영화에서 ‘연출하지 않는 연출’을 선택한다. 그는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그 감정을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 한 남성이 자신이 선택할 기억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원 중 한 명이 그에게 말한다. “당신이 살아온 날들이 모두 누군가의 기억일 수도 있잖아요.” 이 짧은 대사는 영화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의 기억은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랑 속에서 공유된다. <After Life>는 인간이 ‘기억으로 연결된 존재’ 임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서 계속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망자들이 자신이 선택한 기억 속으로 사라질 때 관객은 슬픔이 아닌 평온함을 느낀다. 그들의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기억의 시작’이다.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After Life>는 죽음의 영화이지만, 실은 ‘삶의 철학서’에 가깝다. 고레에다는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흘려보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죽음 이후에야 자신이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깨닫는다. 한 여인은 “나는 늘 후회만 했지만, 그때 그 햇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단순하지만, 모든 삶의 본질을 담고 있다.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지만,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잊는다. 고레에다는 이 잊힘의 세계에서 ‘기억’을 구원으로 제시한다. 그는 죽음을 ‘단절’로 그리지 않고, ‘관찰의 연속’으로 표현한다. 죽은 자들은 여전히 이야기하고, 듣고, 생각한다. 그들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지만, 여전히 인간이다. 그들의 대화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온기가 담겨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기억을 재현한 필름을 바라본다. 화면 속에는 젊은 시절의 자신이 있다. 그는 그 장면을 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 순간 관객은 알게 된다. 삶이란, 결국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된다는 것. 고레에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다. <After Life>는 죽음을 두려움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기억의 완성’으로 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슬프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느낀다. “언젠가 내가 떠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남아 있다면 —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고레에다가 <After Life>를 통해 전하고자 한 가장 인간적인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