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스기타 키이치 감독의 A Man은 인간의 ‘존재’를 묻는 철학적 미스터리다. 제목에서 보이듯 ‘한 남자’의 정체를 둘러싼 이야기지만, 단순한 스릴러나 추리극의 외피를 넘어, 기억과 진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심리극에 가깝다. 일본 독립영화의 미학은 종종 ‘작은 이야기 속의 거대한 사유’로 표현되는데, A Man은 바로 그 정점에 서 있다. 영화는 한 여자가 남편의 사망 이후, 그가 전혀 다른 인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감독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보다, 그 진실이 인간의 마음에 남기는 흔적에 집중한다. 사회적 신분, 이름, 과거의 기록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은 여전히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가—이 영화는 그 질문을 담담하고도 집요하게 던진다.
영화 <A Man> 속 정체의 그림자
A Man의 서사는 ‘정체의 부재’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남편의 죽음 이후, 아내 리에는 그의 과거를 추적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였는지를 밝히면 밝힐수록, 진실은 오히려 더 모호해진다. 감독은 이 과정을 수사물처럼 빠르게 전개하지 않는다. 대신 느린 리듬 속에서 정체성의 균열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보다 그림자, 반사된 이미지, 뒷모습을 더 자주 보여준다. 이 ‘비가시성’은 영화의 핵심이다. 인간의 정체란 결국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는 아이러니. 일본 독립영화의 여백의 미학이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리에는 남편의 흔적을 좇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진실을 찾는 일은 타인의 과거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온 세계의 틀을 해체하는 일이다.
감독은 정체성을 ‘이름’의 문제로 압축한다. 사람들은 이름을 통해 서로를 부르지만, 그 이름이 거짓이었다면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통해 인간관계의 근본적 불안함을 드러낸다. 리에가 남편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이해하게 된다. 정체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그림자 속에도 사랑과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스기타 감독은 인간의 실체를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모호함’ 속에서 인간의 진실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A Man은 그렇게 현실과 허구,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인간의 정체가 얼마나 불안정한 구조물인지를 보여준다.
진실의 불안
영화가 전개될수록 진실은 드러나기보다 흐려진다. 탐정의 조사, 과거의 증언, 남겨진 사진 등 모든 단서들은 서로를 부정한다. 감독은 이를 의도적으로 설계해 ‘진실을 아는 것이 꼭 해답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본 독립영화는 종종 ‘알 수 없음’을 미학으로 삼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경우다. 리에는 남편의 이중적 삶을 추적하지만, 결국 진실의 완전한 형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미완의 상태가 오히려 인간적이다. 감독은 이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불안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진실은 완전하지 않기에 의미가 있고, 불안은 인간이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시각적으로도 이 ‘불안’은 정교하게 표현된다.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탁하고 어둡지만, 곳곳에서 따뜻한 빛이 스며든다. 그것은 진실의 파편을 상징한다. 완벽히 드러나지 않지만, 잠깐의 순간마다 인간의 선함과 사랑이 비친다. 리에가 남편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대화보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비춘다.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은 인물의 내면을 읽게 된다. 일본 인디영화의 감정 연출은 ‘말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A Man 역시 그러하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체험’으로 변한다. 진실의 불안은 고통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더 깊게 만드는 감정의 근원이다.
인간의 흔적
영화의 후반부에서 리에는 모든 조사를 멈추고, 남편이 남긴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녀는 그 안에서 진짜 이름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어떤 이름으로 살았든, 함께한 시간은 진짜였다는 것. 이 장면은 일본 독립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진실의 완전함보다 ‘감정의 진정성’을 택하는 태도. 감독은 남편의 흔적을 물질적으로 남기지 않는다. 대신 기억과 감정의 형태로 남긴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에는 집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다시 돌아온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만들어낸 새로운 현실이다.
A Man의 결말은 ‘정체성’의 문제를 해답 없이 남긴다. 그러나 그 미완성의 여운이야말로 진짜 해답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회가 부여한 이름, 가족 안에서의 역할, 그리고 내면의 진짜 자아—그 모든 것이 충돌하며 하나의 인격을 구성한다. 이 영화는 그 복잡한 구조를 폭로하는 대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애씀을 조용히 응시한다. 정체의 그림자, 진실의 불안, 인간의 흔적—이 세 가지는 A Man이 던지는 근본적 질문의 세 축이다. 스기타 키이치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그것이 일본 독립영화의 철학이며,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