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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역> : 떠밀린 선택의 시작, 머물 곳 없는 사람들, 끝내 반복되는 출발선

by don1000 2025. 12. 28.

영화 &lt;서울역&gt; : 떠밀린 선택의 시작, 머물 곳 없는 사람들, 끝내 반복되는 출발선

 

이제부터 이 영화 속에서의 떠밀린 선택의 시작, 머물 곳 없는 사람들, 끝내 반복되는 출발선을 중심으로 영화 서울역을 바라본다. 작품은 재난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가장 집요하게 다루는 것은 누가 먼저 도망칠 수 있었는지, 누가 끝까지 남겨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문제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자꾸만 발걸음이 멈춘다. 왜 이 사람들은 여기까지 밀려왔는지, 왜 선택처럼 보였던 행동들이 사실은 선택이 아니었는지, 영화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영화 <서울역> 속 떠밀린 선택의 시작

떠밀린 선택의 시작은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물들은 스스로 위험한 장소를 택하지 않는다. 이미 갈 곳이 없어진 뒤에야 서울역이라는 공간에 도착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어떤 표정으로 서 있는지, 무엇을 들고 있는지, 누구와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 모습만으로도 선택의 여지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충분히 느껴진다. 떠밀린 선택의 시작은 개인의 판단 실패로 그려지지 않는다. 작품은 인물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정할 수 있는 지점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무시이거나 폭력이고, 믿을 수 있는 관계는 이미 끊어져 있다. 이때 인물들이 택하는 행동은 선택이라기보다 반응에 가깝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누군가를 믿는 것도 스스로 계획한 결과가 아니다. 떠밀린 선택의 시작은 그래서 비극의 출발점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과정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이 지점을 서둘러 넘기지 않는다. 관객이 불편함을 느낄 만큼 충분히 머물게 하며, 선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쉽게 책임의 방향을 바꿔 버리는지를 보여 준다. 나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등 떠밀린 선택이라고 하여도 그 선택의 시작은 모든 방향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머물 곳 없는 사람들

머물 곳 없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화면을 채우는 실제 주인공들이다. 서울역은 수많은 사람이 스쳐 가는 장소지만, 작품 속에서는 머무를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변한다. 인물들은 잠시 앉아 있을 뿐이지만, 그 잠시는 끝을 알 수 없다. 영화는 이 상태를 비참함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차분하게 보여 준다. 머물 곳 없는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무능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택지가 차단된 상태에 놓여 있다. 일자리는 조건을 요구하고, 관계는 대가를 요구하며, 안전은 이미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작품은 이 구조를 한 번에 설명하지 않고, 작은 장면들을 통해 쌓아 간다.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묻히는 장면, 경찰의 시선이 지나치는 순간, 군중 속에서 개별 인물이 사라지는 컷들은 머물 곳 없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사람들은 투명해진 존재들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지만 닿지 않는다. 영화는 이 투명함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유지한다. 그 담담함 때문에 관객은 더 오래 그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머물 곳 없는 사람들은 재난이 시작된 뒤에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이전부터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저 재난이 시작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였더라도 중요하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아서 무시 가능했던 존재였지만 재난 이후에 모든 상황이 바뀌면서 그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끝내 반복되는 출발선

끝내 반복되는 출발선은 영화가 남기는 가장 씁쓸한 감각이다.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끝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출발선으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이 남는다. 인물들은 도망쳤고, 싸웠고, 버텼지만, 다시 비슷한 상황 앞에 서 있다. 영화는 이 반복을 우연이나 비극적 장치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조의 결과다. 한 번 밀려난 사람은 다시 밀려날 가능성이 높고, 보호받지 못한 선택은 다음 선택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끝내 반복되는 출발선은 희망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희망이 왜 쉽게 사라지는지를 보여 준다. 누군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지만, 그 의지가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판단을 넘긴다.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했는지, 아니면 애초에 다른 조건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작품은 그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출발선을 그대로 보여 주며, 그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의 얼굴을 오래 비춘다. 그 얼굴들은 분노와 체념, 그리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뒤섞여 있다. 서울역은 재난을 그린 영화이지만, 재난 이후의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난 이전부터 이어져 온 출발선이 얼마나 쉽게 반복되는지를 보여 주며, 그 반복을 멈추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