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Under the Skin>(2013)은 개봉 당시 독창적인 연출과 파격적인 시도로 인해 큰 화제를 모았지만, 상업적으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아 낯설고 차가운 분위기를 형성했으며, 인간 사회에 침투한 외계인의 시선을 빌려 인간 존재와 욕망, 그리고 삶의 본질을 탐구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내러티브나 친절한 설명을 배제하고, 미니멀리즘적이고 실험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일부 관객에게는 강렬한 예술적 체험을 제공했지만, 다른 관객들에게는 난해하고 불친절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작품성은 극찬을 받았으나,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전형적인 예술영화의 길을 걸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실험적 영상미
<Under the Skin>이 독립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실험적 영상미다. 글레이저 감독은 영화적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에서 기존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시도를 펼쳤다. 영화 초반부에는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나열되며,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형상을 갖추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관객에게 즉각적인 이해를 제공하기보다는 감각적 체험을 우선시한다. 또 거리에서 실제 사람들을 촬영해 스칼렛 요한슨과 상호작용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혼합하여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린다. 이는 인간 사회를 관찰하는 ‘외계인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조명 역시 독특하게 활용되었다. 검은 공간 속에서 인간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무대 연극을 연상시키면서도 시각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준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서사보다는 시각적 경험에 무게를 둔 것으로, 영화가 하나의 미술적 설치물처럼 느껴지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영상미는 단순한 미적 장치를 넘어 인간 존재의 공허함과 덧없음을 체험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작동했으며, 이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외계적 서사
영화의 서사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외계에서 온 여성의 형상을 한 존재가 스코틀랜드 거리를 배회하며 남성들을 유혹하고, 이들을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끌어들여 생명을 흡수하는 구조다. 하지만 감독은 이 단순한 설정을 통해 인간의 본능, 욕망, 그리고 정체성 문제를 탐구한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철저히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사회와 접촉하며 점차 감정과 공감이라는 요소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한 장면에서 장애를 가진 남성을 마주하는 순간, 그녀의 태도는 미묘하게 변한다. 인간을 단순히 사냥감으로 보던 존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간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러한 서사는 외계인의 시선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즉, 이 영화에서 외계적 서사는 단순히 SF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메타포다.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가, 인간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이 인간 남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인간 사회의 잔혹성과 외계적 존재의 고독을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 반응
<Under the Skin>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독창적이고 예술적 성취가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했지만, 일반 관객의 반응은 엇갈렸다. 로튼토마토와 메타크리틱 같은 비평 사이트에서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으나, 실제 관객 평점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흥행 성적 역시 저조했다. 제작비 약 1300만 달러 규모의 영화였으나, 전 세계 수익은 700만 달러 남짓에 그쳤다. 이는 상업적으로는 실패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화는 ‘컬트 영화’로 자리 잡았다. 실험적 연출을 선호하는 관객과 평론가들은 반복해서 영화를 탐구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고, 영화학교나 학문적 연구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되었다. 특히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 변신은 주목받았다. 그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의 스타 이미지를 내려놓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가운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미카 레비가 맡은 음악은 영화의 불안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Under the Skin>은 초기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사에 길이 남을 실험적 성취로 기록되었고, 이후 독립영화와 SF 영화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